MXY7 Ohka

 

 
 
FLYHIPPO`s  WARBIRD REVIEW
 
-  Yokosuka MXY7 Ohka "Baka" -
 
 
이글은 고공출격의 객원 필진 중 한분이신 FlyHippo님이 기고해 주신 글입니다. 궁금하던 이차대전 일본의 항공기들에대한 완벽한 리뷰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이번엔 히포님의 두 번째 리뷰 자살 비행기 오카입니다.
 
 
이제부터 히포님의 글입니당
 
이 비행기는 지극히 일본적인 비행기로써 순전히 자살만을 위해 설계된 뱅깁니당. 세상에 이런 뱅기가 있는지 저도 놀랬습니당. ☆☆ 뱅기가 다 있네여...
 
 
 
 
[사진] 요코수카 MXY7 해군 자살 공격기
 
 
1944년 여름, 일본은 가차없이 진격해오는 연합군의 엄청난 힘에 직면하면서, 전통적인 전술로는 패배를 피할 가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일본 장교들은 혁신적인 새로운 전투 방법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제 405 코쿠타이의 수송기 조종사로 근무하던 미쓰오 오타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로켓엔진을 장비한 자살비행기를 상상하고 있었고, 동경대학 항공 연구재단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상상한 비행기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1944년 8월, 그는 설계도를 제출했다. 일본 해군에서 오타의 제안은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고, 3명이 기술자인 마사오 야마타타다오 미쓰기로쿠로 하토리등이 해군의 요청에 의해 더욱 상세한 구체적인 설계제작이 추진하기 시작했다. MXY7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비행기는 방어용이나 해안 방어 무기로써 다른 항공기로부터 발사되도록 설계되었다. 모 항공기로부터 발사되어 활공한 후 MXY7은 꼬리에 적재된  3개의 고체추진 로켓(하나씩 또는 한꺼번에 발사될 수도 있었다)의 힘으로 목표를 향해 돌진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작은 비행기는 나무와 합금으로 만들어져서 비숙련된 노동자가 대량생산하려면 상당한 주의를 요구했다. 또 이 비행기는 일회용으로만 쓰일 목적이었고, 전쟁 후기라 탑승 조종사들도 훈련이 부족한 미숙련 상태였으므로,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체의 기동성을 높여야만 했다.
 
무동력 시제기의 설계와 건설은 대략 일주일 정도 걸렸다. 그리고 1944년 9월말에 가서는 10대의 MXY7기가 완성되었다. 자살 공격기 오카 모델 11이라 명명된 이 비행기 초기 모델은 1200kg 탄두를 주익에 설치할 수 있었고, 특별히 변형된 1식 해군 폭격기 24J (G4M2e) 의 폭탄 투하실에 매달려  운반되었다. 3개의 4식 마크 1 모델 20로켓은 800kg의 연료를 실은 경우 최대 출력으로 8~10초간 비행할 수 있었다. 무동력 시제기의 시험비행은 1944년 10월에 이루어졌고, 동력 시제기의 시험비행은 같은 달 카시마에서 이루어졌고, 모두 성공했다.
 
 
유탄 비행장에서 발견된 요코수카 오카 모델 11
 
 
 MXY7의 성능은 카시마 3500m (11485ft) 상공에서 무인비행으로 측정되었고, 이 비행기는 동력없이 288 mph 속력을 낼 수 있었고, 엔진이 있는 경우 403 mph 까지 낼 수 있었다. 시험비행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해군은 이 비행기의 생산을 시작했다. 1944년 9월과 1945년 3월 사이에 755대의 오카 모델 11 이 만들어졌다. 그중 155대는 요코수카의 다이치 카이군 코쿠 지지쓰쇼에서 만들어졌고, 날개와 꼬리날개는 요코하마에 있는 나폰 히코키와 카네가와에 있는 후지 키코키에서 하청 생산 되었다. 1945년 3월 21일 오카 모델 11은 제 721 코쿠타이에서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자살 비행기를 실은 16대의 G4M2e 모 비행기들이 중도에서 요격 당하면서, 부화하지 않은 알같이 모항공기에서 떨어져나온 오카기들은 목표지점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투하될 수 밖에 없었다.
 
 
요코수카 오카 K-1 훈련용 활공기이다.
오하이오에 있는 라이트 패터슨 미군 전투기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오카의 첫 번째 성공은 미해군 West Virginia 호와 3 대의 수송함을 손상 입힌 1945년 4월 1일에 이루어졌다. 오카가 처음 격침시킨 배는 구축함 Mannert L. Abele 호였으며, 4월 12일 오키나와에서 격침되었다. 느리고 약한 모 비행기들의 취약점은 특히  대공방어력이 우수한  목표지점에 접근할 때 가장 심각하게 드러났다. 오카 모델 11의 생산은 1945년 3월에 중단되었다.
 
탄두와 동력장치 대신 물 밸러스트로 교체한 오카 K-1 시험기는 다이치 카이군 코쿠 지지쓰쇼에서 만들어졌고, 경험이 부족한 조종사 훈련을 위한 것이었다. 이 물 밸러스트는 착륙할 때쯤 속도를 착륙속도인 138mph로 줄이기 위해서였고 이 비행기는 접을 수 있는 강착장치를 장비하고 있었다. 오카 모델 22는 더욱 빠른 폭격기인 진자 (P1Y1)에서 운반될 수 있도록 개량된 버전이었다. 오카 모델 22는 기존 오카 모델 11보다 작았고, 실을 수 있는 탄두도 600kg밖에 없었다.
 
 
터보제트 동력의 자살공격기 오카 모델 22.
그림속에서 미쓰비시 J8M 슈수이를 제트기를 비롯한 다른 시험기들을 볼 수 있다.
 
 
 
요코수카 오카 모델 22의 엔진, 공기 흡입구와 엘리베이터를 볼 수 있다.
 
 
모 비행기가 더욱 안전한 거리에서 발사하기 위해 오카의 사정거리를 늘리기로 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오카 모델 22는 가스 발전기를 갖춘 히타치 100마력 4실린더 Tsu-11 제트엔진을 채택했다. 50대의 오카 모델 22는 다이치 카이군 코쿠 지지쓰쇼에서 만들어졌고, 아이치 코쿠키와 무라카미 히코키, 미구로 히코키, 그리고 후지 히코키에서도 하청 생산이 요구되었다.
 
 
요코수카 오카 모델 43과 Ne-20 터보제트의 모형
 
 
그러나 이 공장들이 완성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 버렸다. 1945년, 한 번의 시험비행이 있었다. 그러나 투하한 직후 날개 아래 장비된 보조로켓의 고장으로 파일럿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스톨이 걸리고 말았다. 오카 모델 확대버전인 Ne-20 터보제트를 장비하고 800kg 탄두를 실을 수 있었던 오카 모델 33은 해군폭격기인 렌젠(G8N1)에서 투하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우선권에서 밀려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다.
 
Ne-20 터보제트를 장비하고 잠수함에서 발사되도록 설계된 오카 33 확대형 오카 43A는 격납고에 보관하기 위해 날개가 접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오카 모델 43A와 비슷한 오카 모델 43B는 일본 본토 방어를 위해 해안 근처 동굴에서 발사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비행기는 발사된 직후 속도를 늘릴 수 있도록 설계된 윙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패망과 함께 생산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2좌석의 훈련기인 오카 모델 43 K-1 카이 와카자쿠라는 제한된 숫자가 생산되었고, 2번째 칵핏에 탄두를 장비하고 있었으며 착륙을 위한 플랩과 썰매를 장착하고 있었다.
 
 
요코수카 모델 22의 Tsu-11 동력장치에 설치중인 4실린더 히타치 엔진
 
 
그리고 동력연습을 위해 한 개의 4식 마크1 모델 20 로켓을 꼬리에 장비하고 있었다. 다른 오카 모델들은 나카지마에서 생산된 날개와 오카 모델 11의 동력과 오카 모델 22의 기체를 결합시킨 오카 모델 21이 있었고, 다른 비행기에 밧줄로 묶어 목표지점까지 이동한 후 발사되는 Ne-20 터보제트가 동력원인 오카 모델 13도 있었다.
 
 
오카 11의 단순한 칵핏.
 
 
드디어 자살폭탄 오카의 허접리뷰를 마칩니다. 지겨운 제 번역 끝가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하루만에 모두 번역해서 머리가 다 아프네여.. 그럼 다음엔 미쓰비시 레이센을 천천히 번역하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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