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날이다

제 입었던 떼묻은 옷을 다시 집어 입고 어제 밤에 먹었던 그 반찬에 그 밥을 다시 말아 먹어도 그래도 오늘은 새로운 날이다. 탄핵, 여성, 계급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로 전개된 17대 총선은 한국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었던 이들이 오랜 숙원인 '제도 정치권 진입'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이 그렇고, 높은 비율은 아니지만 여성의 정치참여가 늘어났다는 것 또한 17대 총선 결과의 가장 큰 특색이다. 이들은 머지않아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질 정치세력을 대신하여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일단 열린우리당의 원내과반수 의석 확보는 '한민 공조'의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들의 엄중한 심판인것만은 확실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7대 총선의 최종 투표율이 60.6%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는 총 유권자 3559만6497명 중 2158만1550명이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지난 총선(57.2%)에 비해 3.4%나 오른 수치이다. 지역구 243석과 비례대표 56석, 모두 299석의 의석이 달린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152석, 한나라당 121석, 민주노동당 10석, 민주당 9석, 자민련 4석 열린우리당은 과반(150석)보다 2석이 더 많은 152석을 확보했다. 23년만에 처음으로 단일정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한 제1당이 된 것이다. 국민의 힘으로 의회권력이 교체된 것이다.

그러나 대구경북 27개 선거구 가운데 대구 12곳 전체를 비롯해 경북의 문경·예천 선거구 한곳을 뺀 26곳을 모두 한나라당이 차지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국회 과반수를 차지해 압승을 거둔 전국 상황과 달리, 대구경북에선 단 한곳에서도 이렇다할 접전을 치르지 못한 채 평균 20% 안팎의 낮은 지지율로 참패의 고배를 마셨다. 열린우리당이 이번 선거에서 얻은 당 지지율은 대략 38%로, 탄핵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의 지지율 13%와 합치더라도 50%내외에 머문다. 반면에 탄핵을 찬성했던 한나라당 지지율 35%, 민주당의 지지율 7%, 자민련의 지지율 3%를 합친다면 45%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지지율 합인 50%와는 큰 차이가 없다.

호남에서 ‘DJ와의 관계’는 당선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더 이상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반면에 이번 선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전라도보다 좀더 보수적인 성향을 띤 경상도 유권자들이 아직까지도 여전히 박정희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공화당 박정희','민정당 전두환', '민정당 노태우', '신한국당 김영삼' 그리고 '한나라당 이회창'을 선택해온 영남인들의 선택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 전략적인 투표행태다. 결국 '또다른 형태의 지역주의'인 것이다.

지난 60~70년 한국 경제의 부흥을 이끌었다는 박정희라는 인물. 그는 일제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가 낳은 비정상적 태생의 지도자였다. 그가 이끈 새마을운동이 가시적으로 대단한 경제성과를 낳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노동집약적 산업 위주의 발전을 통해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였는지는 모르나 장기적으로 빈익빈 부익부는 더욱 심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그에게 특히 대구 경북지역은 아직까지 묘한 향수를 느끼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대표의 등장으로 한나라당의 생존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우리 정치와 국민의 정서가 박정희의 그늘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은 곧 그가 이끈 경제 성장의 덕을 본 사람들이 그를 다시 그리워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것처럼 빤히 속보이고 파렴치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가난한 사람들이 늘 추위와 배고픔에 떠는것은 부자들이 따뜻한 봄을 잡고는 놓아주질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대거 의회에 진출했는데 걱정이다. 국민이 물결 속에 선택했는데, 결국 피해자가 될 것이다. 겪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정당득표율 3%를 넘으면 비례대표 두 석을 얻게 돼 있던 자민련의 비례대표 1번 김종필 총재와 2번 성완종 대아건설회장의 금배지가, 민노당 비례대표 8번인 노회찬 선대본부장과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24번인 김재홍 경기대 교수에게로 넘어갔다. ‘5·16’과 ‘3김 시대’를 대표하던 마지막 상징인 김 총재가 헌정 사상 초유의 기록이 될 뻔한 10선 고지에 못 오르게 된 것이다. 78세 고령의 그, 숱한 곡절을 겪으면서도 부침(浮沈)의 연속으로 현실 정치에 살아 남으며 만년 '2인자' 라는 칭호를 들어왔던 그가 마지막까지 추한 모습으로 어리석은 말만 되풀이 하며 정계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정계를 떠나야할 사람은 김종필 한 사람만이 아니다. 그를 따라 사라져야할 것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늘은 새로운 날임에는 분명하다.


2004/04/16/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