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파스퇴르 연구소 깊숙한 방 하나에는 파스퇴르 시신이 있다.

 

    파스퇴르의 사후에 프랑스의 역사적 인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구냐는 앙케이트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때 파스퇴르가 나폴레옹을 제치고 단연 1위로 뽑혔다고 한다. 1888년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은 돈으로 '파스퇴르 연구소'가 파리에 세워졌는데, 이 연구소는 에이즈(AIDS) 바이러스를 최초로 분리해 내는 등 현재 세계 최고의 미생물학 관련 연구소이다.
   그리고 그는 "
과학에는 국적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고 하여 이탈리아의 대학의 초빙을 거절하였다.


<파스퇴르>

   프랑스 동부 접경 지대의 한 소도시에서 파리의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처음에는 결정화학에 대한 연구를 했으나 1954년 경부터 미생물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마침내 그는 자연 발생설의 주장처럼 각종 질병이나 부패 현상 등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원인균에 의한 것이라는 '세균학' 또는 '면역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 당시 프랑스의 양조산업은 너무 빨리 쉬어버리는 포도주 때문에 매년 수천만 프랑의 손실을 입고 있었다. 그는 발효액에 있는 박테리아가 그 원인임을 밝혀냈고, 1863년 약 55℃로 가열하면 포도주는 변질시키지 않고 박테리아의 독성만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많이 사용되고 있는 '파스퇴르식 저온살균법(pasteurization)'의 시초였다. 이 비법은 후에 맥주와 우유에도 적용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 도중 파스퇴르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즉 여러 질병이 해로운 미생물 즉 세균이나 박테리아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1873년 탄저병이 발생하여 소와 양들이 떼죽음을 당하자 파스퇴르는 탄저병의 원인이 박테리아임을 밝혔고, 닭의 콜레라균도 배양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를 발판으로 그는 1881년 탄저병 백신을 만들 수 있었고, 나아가 '세균 병인설'을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었다.

   그가 재직하고 있었던 소르본느 대학의 강당에서는 그의 71세 생일 축하 행사가 열렸다. 이날  그는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고 한다." 세계 젊은이들이여! 우연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영혼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오른쪽 동상은 소르본느 대학에 세워진 파스퇴르 동상이며, 아직도 파스퇴르 연구소의 깊숙한 방 하나에는 파스퇴르 시신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