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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의
아버지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주저없이 18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프랑스의 라부아지에를 지목할
것이다. 물은 원소가 아니고 수소와
산소로 이워진 화합물인 것을
밝히는 등의 중요한 발견과 최초의
화학교과서 저술을 통해 근대
화학의 기초를 다진 사람이다.
그는
후일 정보 고위직에서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맡았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라부아지에를
질시했던 지휘관 마라는 그를
인민의 적으로 몰아 단두대로
보낸다. 유명한 수학자 라그랑제는
라부아지에의 머리가 떨어지는
데는 1초도 안걸렸지만 그런 머리가
다시 나타나려면 백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러나 10주일 후 그를 단두대로
보냈던 사람들이 다시 단두대로
가야만 했다. 그런데
라부아지에가 파리를 출입하는 재화에 철저하게
세금을 매겨 인민의 원성을 듣게 된 연유는 다분히
그의 과학적인 업적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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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타서
재가 남으면 무게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소에 사용된 공기 중의 산소의 무게를 재고,
연소의 결과로 생긴 이산화탄소와 물의 무게를
재면 반응물(나무, 산소)과 생성물(이산화탄소,
물, 재)의 무게 차이는 전혀 없다. 화학
반응의 대차대조표는 언제나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는
말이다. 정밀한 저울을 만들어 여러 반응에 대해
생성물의 질량에서 반응물의 질량을 뺀 값은 0이라는
것을 보인 라부아지에는 자연의 엄격한 법칙을
세금을 매기는 데 적용해 인민의 적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라부아지에의
질량 보존 법칙은 원자의 존재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수소가 산소와 반응해 전혀 성질이
다른 물질이 되는 데, 없어진 수소의 무게와 산소의
무게를 합한 것이 생긴 물의 무게와 같다고 하자.
그러면 빵 사이에 고기를 넣어 햄버거를 만들 듯이
물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재배열돼 생긴 화합물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물 원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말이다. 이렇게
해서 탈레스 이래 원소로 생각됐던 물은 원소의
위치를 잃어버렸다. 반면 물, 불, 공기, 흙 식으로
막연하던 원소는 산소원자, 수소원자 등 구체적인
원자의 집단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특히, 연소에서 공기의 역할을 연구하여
중요한 업적을 남긴다. 1772년 11월 1일 황과 인이 탈 때에는 공기를 흡수하여 무게가 증가하고 산화납(Ⅱ)를 숯과
같이 가열하여 생긴 금속성 납은 공기를 잃어 버려서 산화납(Ⅱ)보다도 무게가 감소한다는 사실을 과학 아카데미에 보고했다. 아직 이 과정에서
공기의 역할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연구를 계속해서 그 실험결과를 그의 첫 저서인 <물리와 화학 소론>에 실어 출판했다.
그해에
영국의 조지프 프리스틀리는 적색 수은 침전물(산화수은)을 가열하여 발생하는 비(非)플로지스톤 공기를 발견했다. 참고로
플로지스톤은 연소하는 물질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즉, 연소할 때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서 재만 남고
질량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라부아지에는 프리스틀리가 얻은 결과를 확인하고
실험을 확장했다. 그는 연소할 때에는 주어진 공기 중의 일부만이 사용되며, 프리스틀리가 발견한 새로운 공기가 바로 그 작용을
하며, 사용되지 않은 비활성 기체 혹은 질소 기체가 뒤에 남는다고 추론했다. 그는 새들이 이 새로운 공기 속에서 더 오래 살며, 탄소와 결합하면
1754년 조세프 블랙이 발견한 고정된 공기(이산화탄소)가 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리고 대기가 화학 반응에 관여하는 여러 가지 다른 기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많은 물질, 특히 산의 조성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777년에 과학 아카데미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그는 새로운
플로지스톤이 제거된 기체를 산소 또는 산생성물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연소가 이제까지 믿어져왔던 것처럼 플로지스톤(가장의 불의 요소)이 빠져나간
결과가 아니라 연소물이 산소와 결합해서 생긴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연소반응이론을 만들어냈고, 근대 화학의
첫걸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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