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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1856-1943)는 1857년 7월, 구 유고슬라비아의 세르비아에서 태어났다. 테슬라의 아버지는 집안의 오랜
전통 대로 그리스 정교 성직자이며, 테슬라의 어머니는 발명가로서의 재능을
갖고 있었다. 또한 기억력도 월등하게 뛰어나서 상당히 긴 책의 내용을 암기 했다고 한다.
그리고 12살 때 불의의 사고로 죽은 테슬라의 형도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천재였다. 이처럼 집안의 천재성을 물려받은 테슬라는 다섯 살 때
처음으로 수(水)차를 발명하였고, 친척들에게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에너지를 얻는 계획을 설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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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테슬라의 이 계획은, 1895년에
테슬라의 특허를 이용하여 웨스팅 하우스사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교류 발전소를 만듦으로써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다. 그 후 전기 공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헝가리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교류 모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개발하였으며 친척의 소개로 파리에 있는 에디슨의 유럽 지사에서 전기 기술자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교류 모터에 대한 생각을 계속 발전시키던 중,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교류 기술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 받기 위해서
1884년 6월 미국으로 이주하여 에디슨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테슬라의 기대와는 달리 에디슨은 자신이 발명한 전구의 수요를
늘리기 위해서 직류 방식을 주장하였다. 결국 테슬라는 에디슨과 결별하고 독립된 연구소를 운영하며 교류 발전기와 교류 모터 등 교류 송, 발전
시스템을 완성하였다. 전기를 직류방식으로 운반하면, 전선의 두께가 매우 두꺼워야 하고, 거리에 따라 손실이 많아 단지 전기공급소에서 수 km
떨어진 곳까지만 공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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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의
주장은 교류방식이 직류방식보다 위험하다는 것으로
기자들 앞에서 동물들을 교류로 감전사
시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대해 테슬라는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에서 자신의 몸에 교류전류가
지나가게 한 후 전등을 켜는 모습을 직접 사람들 앞에서 보여줬다. 그 후 계속해서 무선 전신과 각종 터빈 등 많은 중요한 발명과 연구를 하여 과학 기술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발명에 대한 열정은 만년까지 식지 않았으나 자금 부족으로 매우 불우한 노년을 보냈으며 빈곤과 고독함 속에서 마지막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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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대부분의
천재들과 마찬가지로 테슬라도 사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1943년 그가 죽은 후에 미국은 무선 전신에 대한 테슬라의 특허가
마르코니의 특허에 우선함을 인정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웨스팅 하우스 등이 가지고 있던 많은 기술들이 테슬라의 업적으로 평가받게 되면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가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테슬라의 뛰어난 재능과 낭만적인 생애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지금 현재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시대를 너무 앞서 갔기에 사람들로부터 몽상가 또는 미치광이란 오해를 받기도 했으며, 교류 시스템이라는 혁신적 전력체계로 동시대의 발명왕 에디슨의
직류 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극복했으면서도, 에디슨의 상업적 성공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불운한 과학자로 기록되고 있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
저널리스트 존 오닐 등과의 교우로도 유명한 그는 불멸의 천재 과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시를 짓고 삶의 깊이를 안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훗날 '당신은 왜 신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미국의 과학자 열 명 중 여덟 명이 '테슬라의 전기를 읽고서'란 말을 할
정도로 그가 현대 과학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의 이름을 따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테슬라(T)가 제정되었으며, 교류 전압 송신, 다상 교류
시스템, 무선 통신, 테슬라 코일, 형광등, 라디오 등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한 그의 발명들은 지금도 우리의 미래를 창조하고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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