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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
부자는 전자를 발견한 공로와 전자가
물질파임을 입증한 공로로 각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아버지 J.J. 톰슨은 출판업과 서적상을
경영하는 비교적 안정된 집안에서
태어났고, 우수한 대학 성적 덕택에
28세에 케임브리지 캐번디시연구소의
실험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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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후에 이 연구소를 α 입자 산란 실험으로
유명한 러더퍼드에게 물려주었다.
캐번디시 연구소는 내부벽이 노출된
허름한 벽돌 건물이었다. 그 당시
독일의 빌헬름 오스트발트나 파울
에를리히의 연구소에 비하면 매우
열악한 환경있다. 그러나 캐번디시
연구소에는 독창적인 연구 문제와
접근 방법이 있었고 목표를 향한 독특한
연구 스타일이 있었다. 전자기학을
잘 정리한 맥스웰이 초대 소장이었으며,
원자 모형의 러더퍼드나 보어 등이
이 연구소에서 톰슨의 지도를 받았었다.
톰슨은
전자가 원래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별히 고안된 유리 튜브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전기가 흐를 때 이
입자들을 찾아낼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 튜브를 진공으로 만들 생각이었으나
약간의 기체가 남아 있었는데, 이것이
이동하는 전자와 부딪쳐서 빛을 내어
전자가 이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자가
이동하는 경로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전기장이나 자기장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전자가 (-)전하를
띠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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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애물을 놓았을 때 생기는 그림자로
인하여 직진성을 확인하였고,
장매물 대신에 바람개비를 놓았을
때, 바람개비가 회전하는 것으로
봐서 전자가 입자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자기장에서 휘는
성질을 이용하여 전자의 전하
대 질량비를 계산하여
전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이 전자가 파동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재기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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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의
존재흘 확인한 톰슨은 원자에 대하여 "건포도
모형"을 제시하여 균일하게 분포한 양전하의
구 안에 음전하의 전자가 묻혀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후 전자의 전하의 측정은 밀리칸의 기름 방울
실험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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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파동성은 드 브로이에 의해서 예언되고
계산되었다. 즉, 운동하는 입자의
파장은 그 입자의 운동량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자 역시 파동성을
띌 것이라는 것이다. 파동성을 검증하는
방법은 간섭과 회절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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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의
회절 현상은 데이비슨과 J.J 톰슨의
아들인 G.P.톰슨(위의 사진)이 독립적으로
발견하여 G.P.톰슨은 아버지에 이어
전자에 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아버지가
전자의 입자성을 입증했다면, 아들은
전자의 파동성을 입증한 것이다.
그림의
(a)와 같은 장치를 이용하여 그림
(b)와 (c)를 얻었다. 그림 (b)는 알루미늄
금속박에 X선을 입사시켜 얻은 회절
무늬 사진이고, 그림 (c)는 같은 금속박에
X선 같은 파장을 나타내는 전자를
입사시켜 얻은 것으로 비슷한 회절
무늬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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