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 붕괴에서 α, β입자 그리고 γ선을 발견한 원자 물리학의 창시자 러더퍼드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란 평형과 안정성을 특징으로 하며, 견고하고 쪼갤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J.J.톰슨이 전자를 발견할 때까지도 원자는 (+)전하가 고르게 퍼져 있는 곳에 (-)전하를 띤 전자가 (+)전하만큼 박혀있는 견고한 구조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19세기 말경 방사성 붕괴가 일어나는 불안정한 방사성 원소가 발견된 후에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방사성 원소의 발견은 원자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 후 러더퍼드는 원자의 구조에 대해 보다 합리적인 설명으로 현대적 의미의 원자 모형에 한층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1895년 러더퍼드가 고향인 뉴질랜드의 스프링그로브를 떠나 영국의 케임브리지의 캐번디시 연구소에 도착한 때는 마침 뢴트겐이 X선, 베크렐이 우라늄 방사성을 발견하는 등의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톰슨의 전폭적인 지지속에서 퀴리부처와 함께 방사성 물질이 방사하는 방사능선이 몇 가지 종류임을 발견하고 (+)전기를 가진 것을 α선, (-)전기를 가진 것을 β선이라 명명하고, 1900년에는 전자기파의 성질을 가진 것을 γ선이라 명명하였다. 맥길대학에서 1902년에는 소디(Soddy)와 공동으로, 우라늄과 토륨이 방사선을 방출하여 붕괴해가는 도중에 일련의 중간 원소로 변화해 가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하였다. 이 실험결과 소디는 동위원소의 존재도 밝힐 수가 있었다. 이러한 중간원소의 붕괴 속도는 각각 일정하고, 처음의 양이 반으로 감소되는 시간도 각각 일정하다는 것도 알아내고 러더포드는 이 일정한 시간을 반감기라고 명명하였다.

   그 후에도 러더퍼드는 원소의 방사성 붕괴이론, α입자의 본성 연구, 원자핵의 발견 등으로 러더포드는 1908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도 원자핵을 발견한 연구는 1906년 캐나다 맥길대학에 있을 때 시작되었다. 금속박에 의한 α입자의 산란에 관한 연구로 영국으로 돌아와 만체스터 대학 근무 때에도 계속하여, 불과 1/2,000mm 두께의 금박에 α입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으로 원자핵의 개념을 개발하였다. 원자내에는 그 중앙부에, (+)전기를 가진 극히 작은 입자가 존재하고 원자내의 양성자는 모두 여기에 모여 있으므로 원자핵이 실질적으로 원자의 무게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위 그림에서 납은 방사성 붕괴에서 나오는  γ선의 통과를 막기 위함이고, 금박에 충돌시켰을 때 산란되는 것은 (+)전하를 띤 무거운 원자핵이 중앙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와 같은 원자핵의 발견을 토대로 원자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돌고 있는 태양계와 같은 구조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 모형에서  그 당시의 전자기학의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전자가 돌 때 생기는 전자기파의 방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고, 그 당시에 발견되고 있었던 선스펙트럼의 분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러더퍼드의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는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하나의 원소를 다른 원소로 변환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옛날 연금술학자들의 꿈을 실천시켰으며, 또한 최초의 인공 핵반응을 실현시킨 것이다. 1924년에는 러더포드는 거의 모든 가벼운 원자핵으로부터 양성자를 쫓아내는데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