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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초기업적을 '사고 영역에서 최고 형태의 음악성'이라고 크게 칭찬했지만, 양자역학은 원자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고전물리학의 합리적 일반화'라는 보어의 주장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인슈타인과 보어는 여러 해 동안 물리학의 근본
문제들에 대해 여러 번 토론했고, 때로 그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레이덴대학교 이론물리학교수 파울 에런페스트와도 함께 토론했으나, 그들은 결코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보어는 이 토론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인슈타인의 도전적 반대가 보어 자신의 관념을 발전시키는 데 얼마나
중요했으며 그의 반대가 그에게 얼마나 깊고 지속적인 인상을 남겼던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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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 아브라함 파이스는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영원한
정신적인 논쟁상대였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이 죽은 후에도 보어는 마치 아인슈타인이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그와 논쟁하곤 했다."
고 하였듯이,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생각에 바탕을 둔 비판을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아인슈타인은 양자론에
대하여 확률만을 제시하는 양자론은 불완전하다고 하면서 "신은 세계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은 역학적·전자기적으로 불안정했지만, 보어는 막스 플랑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몇몇 다른 이론물리학자들이 발전시키고 있던
새로운 양자론의 착상들을 도입함으로써 복사 이외의 경우에도 적용하여 러더퍼드의 원자에 안정성을 부과했다. 이는 고전물리학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 것으로, 보어는 모든 원자는
몇 가지 불연속적인 안정상태 또는 정상상태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이 정상상태는 각각 일정한 에너지값을 가진다고 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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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의 양자론에 관해 보어가 쓴 논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결과는 수소원자가 방출하는 빛의 스펙트럼에서 관찰되는 일련의 선들을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으로부터 상당히 정확하게 이
스펙트럼선들의 진동수를 결정할 수 있었다. 진동수는 전자의 전하, 질량, 플랑크 상수(기호 h로 표시하는 작용양자)로 표시되었다. 또한 보어는
원자가 안정상태에 있을 때는 복사를 하지 않고 두 안정상태 사이에서 전이할 때에만 복사한다고 가정했다.
그렇게 방출된 복사가 가지는 진동수는 그
상태 사이의 에너지 차이를 플랑크 상수로 나눈 값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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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원자가 연속적으로 복사를 흡수하거나 방출할 수는 없고 오직 일정한 단계들이나
양자도약에서만 복사의 흡수·방출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한 원자가 내는 복사의 다양한 진동수들은 그 원자 안에서 움직이는 전자들이
가지는 진동수들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생각은 그 당시에는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려운 대담한 착상이었다. 그러나 보어의 이론이
새로운 분광학 실험과 다른 실험들에 의해 확증되었을 때,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이 말했던 것처럼 그것이 '엄청난 업적'임을 인식했다.
보어의
대응원리(correspondence principle)는 물리과학에서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일 때의 철학적 지침으로, 새로운
이론은 이전의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했던 모든 현상을
다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리로 1양자역학의 초기형태인 그의 원자이론을 전개할 때 지침이 된 사상의 정수이다.
예를 들면, 초고속으로 운동하는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상대성이론의 수학적 체계는 저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올바른 결과를 주며,
아주 작은 입자들의 운동을 기술하는 양자 역학의 이론은
비교적 큰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고전 역학의 이론에서도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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